역사

조선 초기, 왕권의 그늘 아래 숨겨진 궁중의 반란들

조선 초기, 이 시기는 왕권이 강력하게 행사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궁중에서의 사건들은 파란만장했습니다. 태종의 딸을 시집 보내고자 했던 태종이 중매인 이속에게 격노한 일화가 대표적이죠. 이속은 태종의 딸이 궁녀의 자녀라는 이유로 결혼을 거부하며 말했습니다.

“궁녀의 딸이라면 내 아들은 이미 죽었어.”

태종은 이 발언에 분노해 이속에게 곤장 100대를 때리고 전재산을 빼앗아 노비로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중매의 실패가 아닌, 왕의 권위를 체감하게 하는 사건이었죠.

궁중에서는 이런 불합리한 사건들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예를 들어, 궁녀가 태종의 무릎을 안마하며 잔소리를 하다 태종에게 진심으로 펀치를 맞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궁녀는 마치 왕에게 대등하게 대하듯 행동했지만, 이로 인해 큰 대가를 치르게 되었죠.

또한 왕실의 신주단지를 모시는 내시들이 왕의 눈치를 보지 않고 대놓고 농담을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왕의 권위를 무시하며 노닥거리기를 일삼았고, 이는 왕에게 큰 실망을 안겼습니다.

이런 가운데, 태종의 면전에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내시는 왕의 귀한 자를 바닥에 던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왕과의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종의 아내가 맡긴 옷을 미치광이 궁녀가 박살낸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조선 초기의 왕실이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조선 초기는 대체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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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속-
(2)번째 딸 정신용주가 시집갈 때가 되자
(3)태용은당시춘전부사엿런이속에계 중매적이름보냄니다
(4)우리 사돈 및자 .
(5)딸 정신이 며느리 삼아쥐_
(6)저
(7)색
(8)그런데이속은왕에계 개정사
(9)하면서 이렇계 말합니다
(10)”궁녀의 딸이라면
(11)내 아들은 이미 죽없다.
(12)정
(13)색
(14)이게 원 소리나면
(15)태종이 결혼시키려던 ‘정신용주 의어머니는
(16)원래왕비의궁녀 신분이없습니다
(17)태종의 승은올 입고후궁이 된 건데요
(18)정
(19)색
(20)즉 이속의말은 이거워습니다
(21)”몸종 출신 천한 용주한데
(22)우리 아들 장가 보내기 싫어.
(23)저
(24)색
(25)왕의딸올 차버리는 지리논 패기
(26)그러나 상대는 형제들올 금살하고
(27)왕위에 오른
(28)조선의길러 묘시- 이-다
(29)백처버린 킬방원은왕쪽올 능면한 죄로
(30)이속울 불러다가 곤장 100대들때리고
(31)전재산을 돌수해버트
(32)노비로 너프시켜버립니다
(33)아부지
(34)’그러석어요
(35)그것도 모자라서아들까지 평생 노총각으로살도록
(36)아부지
(37)왜그러석어요

태종이 자기 딸 시집보내려고 이속이란 관리한테 혼담 넣었더니

‘으디 천한 궁녀가 낳은 딸년을 내 귀한 아들이랑 맞붙이려 들어? 내 아들 죽어서 없음 ㅅㄱ’

이랬다가 개빡친 태종이 곤장 100대 크리 때리고 노비로까지 만들면서 인생 졷망한 ‘이속’좌

근데 이런 용자 (라 쓰고 ㅁㅊㄴ이라 읽는다) 는 이속 말고도 넘쳐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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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빨너가 대공의 무릎에 진심편치름 날리고 빗는 게 아버다까?

1. 무릎안마 할 때 웰케 시원찮냐 잔소리 했다고 태종 무릎에 진심 펀치 날린 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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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어떤 대시들은 반우거에 걸터앉아 노닥거럿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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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반원
(2)왕종 훨비닥
(3)장례에 사용되음 손되
(4)이 반우거튼 왕과 왕비의 신주단지름 모시는 수데입니다

2. 왕실 신주단지 모시는 데에 걸터앉아 노가리 깐 내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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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들고잇터 자클 도랑에 집어 던지기도 하고

3. 꼽좀 줬다고 태종 면전에서 들고 있던 자 바닥에 내동댕이친 분노조절장애 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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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며칠 뒤에 중전마마가 소비에게 옷올 맡코논데
(2)잘 좀 챙겨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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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비가 그러 꽂어서 머립나다

4. 말도 안 되는 억하심정으로 세종 마누라가 수선 맡긴 옷 박박 찢어발긴 미치광이 궁녀

…조선 초기는 대체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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