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자대배치 당시 나는 신상명세서를 작성하던 중 고민에 빠졌다. “취미를 적으라”는 말에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사실, 특별히 좋아하는 운동이 없었던 나는 “적을 게 없다”고 솔직하게 답변했지만, 주임원사의 한 마디에 상황이 급변했다.
주임원사는 나에게 “좋아하는 운동이라도 적어봐”라고 했고, 나는 훈련소에서 익힌 ‘구보’라는 단어를 적어넣었다. 그 순간, 주임원사가 내 신상명세서를 읽고 나서, 나를 사단 본부에 배치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나와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었고, 동네에서 얼굴을 아는 오빠였다.
군생활의 시작
그렇게 나의 군생활은 주임원사의 지휘 아래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초과 근무를 하고, 7시 30분부터 5km를 달리기 시작했다. 아침 점호와 삼식이 구보는 주임원사실의 청소와 업무 준비로 생략되곤 했다.
군 생활의 변화
일이병 때는 오기로 따라 달리다가, 상병 초부터는 오히려 주임원사에게 배속된 폐이스메이커가 되어버렸다. 병장 때는 배낭을 메고 달리는 경지에 이르렀고, 심지어 3km를 11분대에 뛰어냈다.
주임원사가 휴가 전날에도 “내일 아침에도 연병장에서 뛰어라”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그가 나를 좋아해서 챙겨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전역 전날까지도 나는 구보를 하며 군생활을 마무리했다.
전역 후의 삶
전역 당일 아침, 나는 다시 구보를 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주임원사는 나에게 아식스 런닝화를 선물하며 “건강하게 살라”는 격려의 말을 남겼다. 그 순간, 나는 눈물이 흘렀고, 군생활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현재의 나
지금도 주임원사와 연락을 하며 그 시절을 회상한다. 군생활 동안 함께 뛰었던 시간들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2년 전 전역했지만, 그 경험은 여전히 나의 삶에 깊이 박혀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여전히 군대에서의 그 순간들을 잊지 않으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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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대배치 당시
연대 지원과에서 신상명세서클 적올때옆
다
취미 적으라길래
“적음게없습니다”
‘좋아하는 운동이라도 적어”
살면서 딱히 운동올 해본게 없는데…
적올게 없어 훈련소에서 익히
‘구보’
틀 적없다
내 신상명세서논
때마침 놀러온 사단 주임원사(근속 30년,
취미 마라톤) 에계 읽혀버럿고
그렇게 주임원사가 잠으로 밀어붙여 나는
사단본부 주임원사실에 배치 되없음
근데 알고보니 우리 엄마랑 같은 초등학교
출신에 대충 얼굴 아는 동네 두살 오빠 동
향 사람임.
“야 인마 너는 앞으로 내가 매일 좋아하는
구보 시켜출게!”
그렇게
군생활 내내 매일 아침
6시30분 주임원사 초과근무릎 찍고
7시30분부터 5km 달리기 후 같이 사위햇
다
(아침점호랑 삼키로 구보는 주임원사실 청
소밀업무준비로 맨날 생략함)
일이병때는 오기로 따라 달리다가이미지 텍스트 확인
상병초부터는 주임원사 폐이스메이커 되
고
병장때는 배낭매고 달리논 경지에 이름
그만때좀 3km 11분대도 쨌당거같다
심지어 주임원사 휴가 전날에도
“오늘 당직사령한터 말해뒷으니 내일 아침
에도 연병장 뛰어라
야 인마 내가 너 좋아해서 챙겨주는거야:”
말해뒤서
주임원사 휴가날에도 아침에 혼자 5km 달
팀
잘 모르는 신병들이
“00o병장님은 왜 맨날 뒤시논컵니까?”
물어보면
“나는 시지프스의 형벌올 받고있단다… 취
미름 잘못 적은 죄로 “
라고 말할분이없음
군생활 내내 그렇게 달리다가
전역 전날 술 사주서서 마시고
전역날 아침 일어넷는데
시벌 이건 올느지?
전역 당일에도 구보함 으엌크크국크
그래도이미지 텍스트 확인
그나마 3km만 원 거듭 주임원사님의 마지
막 배려워올까
그렇게 마지막 구보 후 사워하고 나와서 인
사하고 가려논데
전역하고도 건강하게 살라면서 아식스 런
낭화 하나 주시논데
진짜 눈물이 갑자기 평평 터짐
“경상도 남자는 그렇게 함부로 우분거 아니
야 인마”
난 그렇게 군생활 내내 뛰다가 전역있다
아 어떻게 글올 맺어야할지 모르켓네
군생활 내내 같이 뒤고 같이 사위해서인지
주임원사남이랑은 지금도 종종 연락하다
지난다
2년전에 전역하석는데
아주 잘 지내고 계심
성능 확실하구만이미지 텍스트 확인
시지프스의 형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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