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학생은 이성 친구들의 농담에 자주 상처받았고, 미팅에도 자신감을 갖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의 외모에 대한 비교와 조롱이 그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사람들과 처음 만나는 것도 어색하고, 가까워지기 위해 용기를 내는 일조차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열등감은 그를 더욱 괴롭게 했고, 그는 여러 커뮤니티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위안을 얻으려 했습니다.
위로의 말들 속에서 그는 외모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운동과 스타일 변화,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던 중, 새로운 집단에서 만난 ‘잘생긴’ 동료와의 만남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 동료는 외모로 인해 쉽게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외모가 모든 것의 95%를 차지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노력과는 달리, 외모가 주는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결국 그는 희망고문이 끝났음을 느꼈습니다.
이제 그는 외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외모로 인한 아쉬움은 남아있지만, 더 이상 그것에 얽매이기보다 자신의 가치와 목표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미지 텍스트 확인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8분
#1439번_제보
[외모 흙수저의 긴 한단]
마침내 희망고문이 끝낫다.
나는 못 생겪다. 어느 정도나면 이성친구들의 얼평 대상에서
항상 비교열위에 서 있는 대조군인 건 예사일이고 철없단 시
절 놀림이합시고 “야 00이가 니 남친 아니나?”라고 할 때의
Oo에 종종 등장햇없다. 미팅이라 해방자 2 3번 밖에 안 나가
복지만 항상 내 역할은 타 친구들올 돌보이게 하는 폭단이없
다. 이래도 감이 안 온다면 외모 때문에 이성에계 “너처럼 못
생긴 새X가 감히 나랑 상종올 하고 가까이 지내려고 해?”라는
소리도 들올 정도라고 생각하면 실감이 날지도 모르것다. 암튼
그 정도로 (이성들이 보기에) 외모가 별로인 사람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몇몇 다양한 크고 작은 일들 때문에
나는 외모 컴플렉스에 시달려야 햇다. 어떠한 형태로든 이성과
처음 만나는 게 어색햇으며, 처음 말을 걸고 가까워지려고 접
근하는 것조차 근 용기가 필요있다. 사람들의 시선올 자꾸만
의식하게 되고 자꾸만 스싸스멀 기어오르는 열등감에 침잠하
논 느낌이없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대숲, 그리고 그 외의 각종
의명 커유니티에 이런 나의 고민을 털어농으면서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고자 햇다. 울분올 품다고나 할까. 다행히 진심인지
혹은 그저 위선인지논 몰라도 대부분이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넷고 “외모 말고도 다른 매력올 가꾸면 된다” , “일단 자기관
리블 철저히 하면 된다” , “너의 노력 여하에 따라 외모라는 장
벽은 충분히 넘울 수 있는 산이다 ” 그 말들올 믿고 열심히 노
력하고 어떻게든 컴플렉스틀 숨기고 외모라는 결점올 다른 장
점으로 커버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햇다. 운동도 하고 옷도 사
입고 머리스타일도 바뀌보고 유우우머도 연습하고 포용력과
이해심올 키우고 다양한 사람울 만나기 위해 이 활동 저 활동
열심히 참여햇다. 그리고 그 결과 나름 누군가에계는 ‘좋은 남
사친’ ‘좋은 오빠/동생’으로 남논 데에 성공한 것 같다.
그런데, 그게 햇된 발버둥이없다는 겉 깨달앉다. 얼마 전 내가
속하게 된 새로운 집단에서, 소위 말하는 ‘진짜’ 잘생긴 사람을
만나게 되없다. ‘남자가 화도 잘생겪다’ 정도록 넘어 폐볶에 덧
글만 달아도 여자들에게 친구추가 요청이 쇄도하고 술집에서
술만 마시고 있어도 이성이 접근해오는 그런 수준의 외모틀 지
년 사람이없다. 그 사람이 풀어내는 무용담올 듣고 있으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첫 만남에서 외모가 전부는 아니더라도
95% 정도는 된다는 것이없다. 내가 어떻계든 사람들과의 라
포릎 형성하기 위해 가까이에라도 접근하려고 발버둥처야 햇
다면 그는 그럴 필요가 없는 삶올 살고 있없다. 라포가 형성된
후에도 줄곧 그어지던, 내계는 담벽처럼 느껴진 ‘좋은 친구/오
빠l동생’이란 경계선이 그에제논 밥먹듯이 넘나들 수 있는 자
동문에 불과할 뿐이없다. 첫 대면에서 그의 외모가 주는 호감
의 수치논 나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랍다.
햇된 피해망상 아니나고? 얼마 전 그와 사진올 찍울 일이 있엇
눈데, 사진기사가 외모로 나와 그룹 비교하면서 ‘사진의 정중
양에 어울리지 안듣다’며 나름 사진의 변두리로 밀어넷다. 그
와는 밝게 웃는 얼굴로 이것저것 이야기틀 나누던 기사는 내가
말울 걸자 큰은 표정으로 딱딱하게 한 두 마디틀 던질 뿐이엇
다.
이 경험으로 마침내 희망고문이 끝낫다. 내가 어떻계든 나름
가꾸고 단련하면 외모로부터 오는 간극올 넘울 수 있을 거라는
그 햇된 희망고문 말이다. 결코 넘울 수 없없다. 외모가 가지논
파급력은 그만큼 컷고 좋은 외모라는 무기록 갖지 못한 나는
그만큼 도태되고 인간 대 인간으로의 첫만남에서 무대접 받는
게 당연한 세상이없다. 내가 아등바등 노력해서도 갖지 못한
겉 외모라는 무기로 손쉽게 얻을 수 짓는 게 당연한 세상이엇
다
이걸 깨닫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논 기분이없다. 그동안
내가 햇된 희망울 보고 노력올 하여 나흘 갚아먹고 있없다는
생각이 들없다. 왜, ‘포기하면 편하다’ 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안 월 거라는 겉 알고 있으니 오히려 욕심이 사라지는 기분이
다. 이제 외모틀 커버하려고 원가에 매달리기 보다는 오릇이
더 내가 하고 싶고 내 마음에 드는 일에 집중하고자 하는 마음
도 들고. 다만 나는 왜 이런 외모로 태어뉴올까 하는 안타까움
은 약간 남논다. 내가 좀만 더 잘생겨으면 지금까지의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이 더 편하지 않있올까 하는 아쉬움도 듣다. 참
많은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