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미국 문화원 폭탄 테러 사건
1983년 9월 22일, 대구 중구 삼덕동에 위치한 미국 문화원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사건은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날 오후 9시 33분, 폭발로 인해 문화원 건물이 파손되고, 1명이 사망하며 4명이 부상을 입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광주와 부산에서의 방화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발생하여, 더욱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누명과 고문
대구 미국 문화원 폭탄 테러 사건은 단순한 폭력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사건 발생 후, 북한 간첩이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기까지 일반인들이 누명을 쓰고 고통받아야 했습니다. 경북대 학생 5명이 특정되었고, 이들은 30일 이상 고문을 당하며 거짓 자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고한 희생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진실의 발견
3개월 후, 사건의 진상이 드러났습니다. 부산 다대포 해안에서 무장 간첩이 붙잡히면서 대구 미국문화원 폭발 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이 밝혀졌습니다. 전충남 간첩은 자신이 감청한 내용을 통해 이 사건이 반미 감정이 높은 남조선 청년 학생들에 의한 것이 아님을 밝혔다고 증언했습니다.
정부의 조사 결과
정부 조사 결과, 사건에 사용된 폭발물과 배터리가 북한 제품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실제 범인은 북한 노동당 연락부 소속 공작원 이철로, 그는 테러 후 북한으로 돌아가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가능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냅니다.
무고한 희생자의 고통
고문을 당한 대학생들은 시간이 지나 어르신이 되었고, 2019년 이들의 무고한 죄가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 한 분은 2005년에 이미 사망하셨습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현실은 여전히 아쉽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사건
이 사건은 단순한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작은 사건도 꼭 기억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1983년 9월22일 오후 9시33분쯤 대구 중구 삼덕동 미국 문화원에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미국 문화원 건물이 파손된 것은 물론이고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는 인명피해도 있었다. 광주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1980)과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1982)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미국문화원방화사건도 잇지 말아야하지만
가방폭파 사건은 일반인이 누명을 쓴 사건임
북한간첩이 잔혹한 고문으로 결국 거짓자백을 하는 바람에 경북대 5명이 특정되었지만 2명이 생포되었음
30일여간 고문하고 자백까지 받고 ..
근데….
3개월 뒤 사건의 진상이 드러났다. 부산 다대포 해안에서 무장 간첩 전충남과 이상규가 붙잡히며 대구 미국문화원 폭발 사건은 북한 소행이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전충남은 “(훈련소 무전장이) 9월 말쯤 나에게 와서 본인이 전파를 감청해 암호 해독한 결과 대구 미국문화원 폭파 성공이라는 내용을 감청했다고 자랑삼아 말했다”라며 “반미 감정이 높은 남조선 청년 학생들이 일으킨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부 조사 결과 문화원 테러에 사용됐던 폭발물 및 건전지가 북한 제품이라는 점도 밝혀졌다. 진범은 북한 노동당 연락부 소속 공작원 이철이었고, 그는 테러 후 북한으로 복귀해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런 미친놈이 다 있었다.
고문받은 대학생들은 이제 어르신이 되어
2019년에 이들의 무고한 죄를 인정해주었음..
그 중 한분인 우성수씨는 이미 2005년 사망하셨다…
국가를 상대로 18억 손해배상을 했지만
6000만원을 받음..
작은 사건도 꼭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