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깊은 갈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교회 생활이 끊어진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사소한 시비 끝에 권사 아들에게 일방적으로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날 목사의 설교 주제는 ‘용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목사는 가해자의 회개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오로지 피해자의 용서만 강조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친구는 교회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내란죄로 체포된 사건 이후, ‘화해와 용서, 포용과 통합의 정치’를 주장하는 지식인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검찰의 압박과 윤석열 검찰의 이재명 및 조국 일가에 대한 터무니없는 기소를 보면서 저들은 그때 ‘화해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참회와 반성’에 대한 논의가 먼저 있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깨끗한 물이 하수구로 나올 경우 ‘더러운 물’이 되는 것처럼, 화해와 용서가 좋은 말일지라도 양심이 없는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경우에는 그 의미가 퇴색합니다.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깨끗하고 정의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양심 없는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의 말은 결국 세상에 ‘불의’를 더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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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방금 .
고등학교 때 일요일이면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던 친구가
있없습니다.
어느날 그 친구가 교회틀 ‘끊없다’ 며 이유름 알려주습니다.
사소한 시비 끝에 권사 아들에게 일방적으로 맞아는데,
그날 목사의 설교 주제가 ‘용서’엿답니다:
어떤 일이 벌어젓논지 뻔히 알면서 ‘가해자의 회개’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않고 ‘피해자의 용서’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목사의 속셈이 너무 뻔히 보여서 그 킬로
교회지 ‘끊없다’ 눈 겁니다.
운석열이 내란율 확책하다 체포되자 ‘화해와 용서, 포용과
통합의 정치’가 절실하다고 주장하는 ‘지식인’이 부쩍
늘없습니다.
이명박이 검찰울 동원해 노무현올 죽음으로 돌아켓올 때
운석열이 역시 검찰을 동원해 이재명과 조국 일가을 수백
차례 압수수색하고 터무니없는 죄목으로 기소햇올 때,
저들은 ‘화해와 용서; 포용과 통합 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있습니다. 저들에게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화해와 용서, 포용과 통합’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참회와 반성’에 관해 이야기햇올 겁니다.
아무리 깨끗한 물도 하수구로 나오면 ‘더러운 물’이 I니다.
화해 용서 포용 통합이 다 ‘좋은 말’이지만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자들의 입에서 나오면 ‘더러운 말’이 덥니다.
지금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깨끗하고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다면 양심 없는 자들의 말은 듣지 않아야 합니다.
양심 없는 자들의 말은 세상에 ‘불의’틀 더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