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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독창적인 도자기, 철화백자의 탄생과 진화

조선 고유 도자기의 탄생

조선 시대, 도자기는 단순한 그릇이 아닌 예술작품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백자에 청색 안료로 그림을 그린 청화백자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명청 교체기로 인해 청화 안료의 수급이 어려워지자 조선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토청의 개발 시도

조선은 청색 안료인 ‘토청’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대신, 흑자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자기 스타일을 창조하게 됩니다.

철화백자의 출현

조선은 철분이 많이 포함된 안료를 사용하여, 백자에 먹으로 그린 듯한 검은 무늬를 넣는 ‘철화백자’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도자기는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조선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중국의 청화백자 재개발

이후 중국이 청색 안료를 다시 개발하면서 조선도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청화백자를 재제작하게 됩니다. 조선은 철화와 청화를 결합한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서민층의 사랑

검은색을 기피하는 조선의 특성상, 철화백자는 주로 서민층에서 애용되었습니다. 가격이 저렴하고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철화백자는 조선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일본과 흑자 기술

여담으로, 흑자 기술이 가장 발달한 곳은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은 검은 도자기를 선호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도자기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조선 고유의 도자기인 철화백자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발전하며,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철화백자

원래 조선도 백자에 회회청으로 그림을 그린 청화백자를 좋아하고 많이 만듬.

그러나 중국이 명청 교체기로 요지경이 나버리면서 회회청의 수급이 끊겨버림.

조선은 자체적으로 토청이라고 부르는 청색 안료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대신 기존에 흑자, 검은 도자기를 만들던 기술을 바탕으로.

철분이 많이 함유된 안료를 써서 백자에 먹으로 그린듯한 검은 무늬를 넣는 철화백자를 자체 제작하게 됨.

이후 중국은 토청을 개발해서 자체적인 청색 안료를 확보했고, 조선도 이를 바탕으로 다시 청화백자를 제작하거나 철화와 청화를 합친 고유한 스타일을 개발함.

다만 검은색을 기피하던 조선 특성상 흑자 기술은 숨만 꼴딱거리는 상황이었고, 철화 또한 검은빛이 돌아 값이 쌌기에 서민층이 애용했다고 전해짐.

여담으로 흑자 기술이 가장 발달한건 일본이었는데 거긴 검은 도자기를 사랑해서 그렇다고.

도자기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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