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 아시아의 문화와 언어 구조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쟁의 결과로 일본이 승리하면서, 일본의 문화와 언어가 중국에 파급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식 번역이 중국식 번역을 밀어내는 의외의 나비효과가 발생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서양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새로운 용어들은 전쟁 후 중국으로 유입되었고, 이는 중국의 학문적 표현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학’, ‘철학’, ‘사회학’과 같은 용어들이 일본에서 온 것이죠.
일본식 용어의 확산
- 경제학: 일본식 번역으로 통일
- 철학: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 사용
- 사회학: 일본에서 유입된 개념
- 물리학: 일본어에서 직접 차용
중국은 처음에는 일본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일본의 용어가 학술 용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예를 들어, 5.4운동 이전에는 ‘민주’와 ‘덕모극랍서’가 동시에 사용되었으나, 나중에는 ‘민주’가 우세해졌습니다.
전쟁 이후 중국은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의 번역본이 중국어로 다시 번역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초기의 중문 판 <공산당 선언>도 일본인의 번역본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이처럼 일본식 번역이 중국어 학문에 미친 영향은 여전히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청일전쟁은 단순한 군사적 승패를 넘어, 문화와 언어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번역 방식과 문화가 중국의 학문에 깊숙이 스며들면서, 두 나라의 관계와 언어적 상황은 예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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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복 (물다숲), 양계초 (똑똑t표)는 economics(경제학)올 ‘계학
(틈물)’ 혹은 ‘자생학(쓸소록)’ 혹은 ‘부국학(흙-록) ‘으로 번
역하고자 햇고, philosophy(철학)올 ‘이학(m록)’ 혹은 ‘지학
(#록) ‘으로 번역하고자 햇으다, sociology(사회학)올 ‘군학
(표물) ‘으로 번역하고, physics(물리학)올 ‘격치학(t손렉물) ‘으
로 번역하고자 한 바 있다:
이렇게 고전에서 근거지 찾고, 고대한어에서 대응하는 번역용
어름 찾는 방식은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이 두 가지 단어는 한동
안 공존하다가 결국 일본에서 만든 단어가 최종적으로 승리하
게 된다 양계초도 부득이 ‘경제학’
‘철학’
‘사회학
‘물리학’ 등
일본산용어름 그대로 쓰게 된다.
중국인들은 일찌기 직접 서양단어름 음역하여 쓰고 일본용어름
쓰지 않으려고 한 적도 있다. 예틀 들어, 5.4운동이전의 문현중
에는 덕모극랍서(-품음록로성17, derocracy) ‘와 민주가 나란히
쓰없다 그러나 결국은 민주가 덕모극합서지 이긴다.
메이지유진 이전에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문화지 수입햇없다.
그러나 메이지유신이후, 특히 청일전적이후, 중국이 일본에서
거꾸로 문화틀 수입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일본산이 한어에 넘
쳐나게 된 시작이다. 청일전쟁이후 중국인들은 일본에 대량으
로 유학올 가고 강국의 길을 찾게 된다. 일본인들이 새로 만든
단어도 중국으로 가져오게 된다.
예름 들어, 최초의 중문판 <공산당선언-은 바로 이대쇠(출*
초)가 일본인의 번역본올 다시 중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 중
문번역본에는 많은 일본산용어가 섞여 있다: 오늘날의 번역본
에도 여전히 일본산이 넘처난다. 예틀 들어 “공산당”과 “선
언”도 일본어에서 온 것이다:
일본식 번역이 중국식 번역을 도태시켰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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