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토착민들의 이름의 의미
신라의 역사 속에서, 성씨가 없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진흥왕 시대의 단양 지역 주민들은 성씨 없이 개인의 이름만으로 불렸습니다. 이 시기의 비석, 즉 단양 적성비에는 신라의 공신들 뿐 아니라 주민들의 이름도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들 이름은 주로 고유어로 이루어졌으며, 관리들의 이름에서도 성씨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통일 신라시대의 이름 짓기
통일 신라시대에는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이름 짓기가 변화하였습니다. 당나라와의 접촉을 통해 성씨를 포함한 중국식 인명이 보편화되었으나, 일반 서민들은 여전히 고유어식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이 시기 성씨는 지배층에 국한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서민들은 성 없이 이름만으로 존재했습니다.
신라 시대의 지배계급 이름
지배계급의 이름으로는 김춘추, 김유신, 최치원 등 다양한 성씨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이름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이며, 그들의 업적과 함께 기억되고 있습니다.
서민들의 이름
단양 적성비에서 발견된 서민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 也?次 (야이차)
- 居杜夫智 (거두부지)
- 伊史夫智 (잇부지)
- 助黑夫智 (죠검부지)
- 豆弥智 (둔지)
조선시대 서민들의 이름
조선시대에는 서민들의 이름이 더욱 고유어식으로 지어졌습니다. 특히 노비의 이름은 그들의 신분을 반영하지 않으면서도 개인의 특징을 담아 지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사리영응기’의 이름들은 고유어로 기록되어 그 당시 사람들의 이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조선시대 여성의 이름
여성들의 이름도 마찬가지로 고유어식이었으며, 그들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박시다녜, 김시긋셤과 같은 이름들이 그 예입니다.
결론적으로, 성씨가 없던 신라시대와 그 이후의 이름 짓기 문화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중요한 일면을 보여줍니다. 오늘날에는 중국식 성씨와 짧은 이름이 일반적이지만, 이러한 고유어식 이름들은 과거의 소중한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신라 단양 적성비)
장수왕 이후로 백여년간 고구려 영토였던 충북 단양 지역을 신라의 정복군주 진흥왕 시대 550년에 공격해 차지한 뒤, 현지 주민들을 신라의 백성으로 포섭하기 위해 만든 비석
비석에는 440자 남짓한 글자를 새겼는데 신라 공신들 이름과 주민들 이름이 있다
대부분 관리들 이름에도 성씨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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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시대의 이름 짓기]
이 시대에는 중국문화와의 접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당나라에 드나들게 되고, 그들을 통하여 중국의 문물이 그대로 우리 나라에 유입되기에 이른다.
사람의 이름도 중국식으로 짓는 것이 점차 보편화되기에 이른다. 중국식의 인명이란 이름의 형태뿐 아니라 성씨를 함께 적는 것을 뜻하는데, 성씨 한자에 이름 두자를 적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러한 중국식 인명은
일부 지배층에 한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성은 없었고 이름 역시 고유어식이었을 것이다.
[신라 시대 지배계급 성씨와 이름]
김춘추(金春秋) · 김유신(金庾信) · 김인문(金仁門) · 김대성(金大城) · 장궁복(張弓福) · 최승우(崔承祐) · 최치원(崔致遠) · 김품석(金品釋)
[단양 적성비 에 나오는 신라 진흥왕 시대 서민들 이름]
也?次 (야이차)
居杜夫智 (거두부지)
另力智 (영력지)
伊史夫智 (잇부지)
西夫叱智 (셧부지)
內禮夫智 (놀부지)
比次夫智 (빗부지)
助黑夫智 (죠검부지)
豆弥智 (둔지)
武力智 (무력지)
導設智 (도셜지)
也尒智 ( 야이지)
巴珎婁 (바도루)
刀只 (도기)
烏禮兮 (오례혜)
道豆只 (도두기)
勿支次 (물기지)
[조선시대 서민들 이름]
조선 왕실,양반과 달리 대부분의 상민들의 이름이나, 특히 노비의 이름들은 철저하게 고유어식으로 짓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조선 초기의 노비문서나 불경 시주 등에 나타난 이름들이 거의 모두가 고유어식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이름에 ‘ᄯᅩᆼ’이나 ‘쇠’ 혹은 ‘○’가 들어 있는 것은 그들의 신분이 천하기 때문이 아니라 장수를 기원하는 부모의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는 작명이라고 한다
노비의 이름은 한결같이 고유어로 지었는데
용모의 특징 등을 잡아서 이름을 지었다.
세종대왕 시기
(1449) 서민 이름
“사리영응기”에 총 47명의 인명이 한자로 된 성씨와 함께 쓰여져 있는데, 특히 고유어 인명을 한글로 적고 있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이름들을 가장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다.
막동
타내
올마대
오마디
오마대
오망디
오미디
쟈가둥
마딘
도티
고소미
매뇌
ᄀᆞ리대
올미
더믈
샹재
검불
망오지
ᄯᅩᆼ구디
수새
쇳디
랑관
터대
ᄒᆡᆫ둥
우루미
어리딩
돌히
눅대
아가지
실구디
검둥
거매
쟈근대
북쇠
은뫼
망○
모리○
강○
곰○
[조선시대 서민 여자들의 이름]
“동국신속삼강행실” 1617년
이 이름들에 성씨가 적힌 것은 그들의 신분이 천민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한다.
박시다녜
니시긋뎡
김시긋셤
심치슈ᄋᆡ
김시녜옥
윤시녜향
박ᄉᆡ경녈
뉴시오월
님 시셕염
원 시운ᄉᆡᆼ
니시죵이냥위
송시슉향
됴시말ᄋᆡ양위
니시업녜
김시향이
됴시뎡녜
박시향이
박시셰운
최시만녜
신시응ᄉᆡᆼ
지배계급과 달리 서민들은 우리말 이름 조선 중기-후기 까지 계속 써왔는데 현재는 저런 이름 거의 소멸됨
현대 한국은 다들 지배계급처럼 중국식 한자 성씨와 2글자 1글자 이름 사용중